티스토리 뷰

관심이슈

미국 트럼프 대통령 일대기(성장과정,학업기,사업기,당선)

신호와 소음 2026. 7. 17. 13:18

목차


     

    미국 트럼프 대통령

    1. 출생과 성장 과정

    도널드 존 트럼프(Donald John Trump) 현 47대 미국 대통령은, 1946년 6월 14일, 미국 뉴욕주

    뉴욕시 퀸스의 자메이카 에스테이트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부친인 프레드 트럼프는

    당시 부동산 개발업자로 상당한 재력이 있어 집안이 부유하였습니다.  어머니 메리 앤 맥클라우드

    트럼프는 스코틀랜드 이민자로 미국으로 이민온 이후, 한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트럼프의 부친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독일계 이민자였습니다. 아버지가 부동산 개발에 성공하여

    부동산으로 크게 부를 축척하여 어린 시절부터 경제적으로 남부럽지 않게 보내게 되었습니다.

    부친은 규율을 중시하고 매우 엄격한 성향을 가져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강조하고 부지런함이야말로

    승리의 기본임을 교육했습니다. 허나, 어린 시절의 트럼프는 활기차고 다시 반항적인 기질을 갖고

    있어 부친은 반항적인 기질을 고치고 규율에 대해 보다 엄격하게 학습시키고자 뉴욕 군사학교(New

    York Military Academy)에 입학시켰습니다.  군사학교는 규율이 엄격하고 조직 내에서의 리더십을

    강조하며 강한 승부욕을 갖게 함으로써 이는 트럼프의 반항적인 기질과 맞물려 거침없는 확신과

    치고 나가는 추진력을 갖게 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성장하면서 아버지를 따라 공사 현장

    을 누비며 현장 경험을 쌓았고 군사 교육에서 배운 승부사적 기질이 아우러지며 트럼프의 인격과

    정체성은 점점 완성이 되었습니다.

     

    2. 10대와 20대의 학업기 및 역량의 형성

    도널드 트럼프는 1964년 뉴욕 군사학교를 졸업한 후 본격적인 비즈니스 지적 역량을 키워 나갈

    목적으로 뉴욕에 위치한 포덤 대학교(Fordham University)에 입학하여 2년간 재학하였습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비지니스를 배우고 더 넓은 세상에 대한 열정으로 1966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와튼 스쿨(Wharton school of 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로 편입하였습니다. 이 대학교는

    이미 비지니스 학문에 있어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었던 터라, 세계적 비즈니스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던 트럼프에게는 아주 훌륭한 배움의 장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와튼 스쿨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부동산과 금융시스템의 매커니즘을 배웠습니다. 주말마다는 부친이 운영하는 부동산

    사무실로 출근하여 실무를 익히며, 대학에서는 이론을, 현장에서 실무를 동시에 배우는 치열한 

    20대를 보냈습니다.  1968년 경제학 학사를 취득하며 와튼 스쿨을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시절

    학교에서는 학문적 이론 탐구를 하였고 실무를 같이 경험하는 시절을 보냈으므로 실제 자산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게 되는 안목을 이미 지니게 되었습니다. 향후 뉴욕 맨해튼이라는 세계적 무대

    에서 비지니스의 엘리트와 협상하고 자금을 금융 시장에서 조달하는 과정에서 과감히 치고 나갈 수

    있는 확신의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3. 30대부터 50대까지의 사업기와 대중적 명성

    대학을 졸업한 트럼프는 아버지의 부동산 회사에 본격적으로 합류하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지

    불과 3년 만에 경영권을 넘겨 받은 트럼프는 '트럼프 그룹(The Trump Organization)'으로 회사

    이름을 변경하며 아버지와 다른 경영 노선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부친은 주로 퀸스나 브루클린

    같은 뉴욕의 외곽 지역에서 활동하였으나, 트럼프의 시선은 뉴욕의 심장부인 맨해튼에 있었습니다.

    1980년대에 30대로 접어들어 맨해튼의 중심가에 화려한 초고층 빌딩인 '트럼프 타워'를 완공함

    으로써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뉴욕 부동산 시장의 거물로 성장하였습니다.  

    마침 이 시기에 '협상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이라는 비즈니스 서적을 출간하였는데, 베스트

    셀러가 되면서 그를 더욱더 미국적인 성공의 아이콘으로 되었습니다. 허나, 호사다마라고, 40대인

    1990년대에 접어 들면서, 무리한 카지노와 호텔 투자는 과도한 부채를 부담하게 되어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었고, 수차례 법인 파산을 신청하기도 했습니다. 허나, 트럼프는 정면돌파의 위기 돌파력을

    바탕으로 한 성향과 브랜드 라이선스 사업으로 수익을 다변화함으로써 재기에 성공하게 됩니다.

    1990년대 후반 동남아의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대한민국도 몇 개 대기업도 망했는데, 그중의

    하나인 대우건설에 브랜드 라이센스를 판매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여의도에는

    트럼프 타워라는 건물이 존재합니다. 위기와 돌파라는 과정에서 어느 듯 50대가 된 트럼프는

    2004년부터 NBC의 리얼리티 TV쇼를 방영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엄청난 히트를 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가 급상승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바로,  '넌 해고야(You're fired')라는 글로벌 유행어를 만든

    TV쇼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였습니다. 트럼프에게 있어서 이 방송의 의미는 미국 전역이

    주목하는 대중적인 스타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이 TV쇼는 미국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생존형 경쟁을 예능으로 잘 승화시켰고 많은 나라의 방송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트럼프의 인지도

    또한 세계적으로 넓게 퍼지는 전환점이 됩니다.

     

    4. 60대의 정치 입문과 극적인 미국 대통령 당선 과정

    어린 시절부터 조금씩 정치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던 중에, 50대의 대중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60대

    후반에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였습니다. 공직이나 군 경력이 전무한 순수 기업인

    으로 리얼리티TV쇼에 대중적 인지도만 많은 사람으로, 당시 많은 기성 정치권이나 언론은 그를

    향해 일시적인 해프닝이나 쇼의 하나로 보면서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특히 트럼프 타워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던 중의 선언 출마는 리얼리티 TV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극적인

    효과를 최대로 끌어내기 위함으로 보였습니다.

    허나, 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강력한 보수적 슬로건을 내걸

    었고, 이에 기존 기성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노동자 계층과 보수층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

    냈습니다. 공화당 후보 선출 과정에서도 초기에는 낮았던 지지율을 TV토론에서 강력한 인상을 심어

    주며 쟁쟁한 엘리트 후보들을 하나 둘 격파하며 결국 공화당 대선 후보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당시 강력한 당선 후보였던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상대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결국

    2016년 11월에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기존의 정치 화법을 완전히 깨트렸고,

    거침없는 직설적인 표현과 SNS를 통한 대중과의 소통은 전통적인 선거 방식을 완전히 깨트리며,

    세계 정치사에 큰 인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5.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성과와 직면한 비판론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슬로건대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표명하며, 기존 국제 질서와

    미국 정책에 큰 변화를 몰고 왔습니다. 대표적인 보수 정책인 법인세 감세와 규제 완화를 대대적

    으로 진행하며 경제 활성화를 유도했고, 북미 협정을 포함한 대외적인 무역협정을 대부분 재협상

    하게 하였습니다. 연방 대법원에는 보수 성향 판사를 대거 임명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에 대해 고율

    관세 정책으로 미국 주도의 패권에 도전하지 못하게 하였고, 중동에서는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중동 평화에 기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직설적인 화법과 거침없는 행동은 기존 전통적인 동맹 관계를

    느슨하게 하는 비판을 받았으며, 미국 우선주의에 근거한 이민자 억제 정책이나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은 인권 침해나 사회적 분열을 심화시킨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로 인해 두번이나

    하원에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는 불명예를 안았으나, 상원에서 전부 부결되면서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계속 이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6. 트럼프 대통령의 자유민주적 시각이 세계에 미친 영향

     

    보수 성향이 강한 공화당 소속의 대통령으로서 미국 입장에서 보는 미국 우선주의는 강렬한 애국

    주의적 성과를 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맹에 대해서도 적절한 분담금 지급 요구, 이민자의 제한

    이나 국경 설치 등도 그런 측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동맹 관계나 소수 약자를 중요시하는

    민주당이나 이런 측면에서 볼 때는 민주주의 시스템이나 사회 통합을 훼손했다는 반발심도 크고

    비판을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허나, 이미 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해진 유럽이나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에게는 큰 경종을 울리고 있으며 이제는 각 나라가 생존력을 강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라의

    정책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는 국가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부정적인 변화라기보다는 오히려 각 나라의 경쟁력을 더

    강하게 하는 긍정적인 변화를 준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 입니다.